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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3·1절… “독립만세” 외쳤던 위인들의 숨은 ‘비밀’
  • 김지연 기자

  • 입력:2018.03.01 09:00
유관순 열사 아버지 시신 업고 만세시위… 3·1운동 촬영해 세계에 알린 외국인도 있어






 

오늘(3월 1일)은 3·1절. 3·1절은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과거를 제대로 아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 따라서 자녀에게 3·1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좋다. 

 

기초적인 역사적 배경에 대해 파악했다면 역사공부에 대한 흥미를 북돋아줄 수 있는 역사 속 ‘숨은 이야기’를 알려주는 것도 효과적인 공부법. 그렇다면 3·1운동과 관련된 위인들의 숨은 비밀로는 무엇이 있을까?

 




○ 3·1운동 꿈 꾼 민족대표 33인, “독립만세” 못 외쳤다?


 

3·1운동은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기획됐다. 민족대표 33인은 당시 우리나라 문화·종교·예술 등 각계 지도층으로,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민족대표 33인이 배포한 “1919년 3월 1일 정오 파고다 공원(지금의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본 사람들은 파고다 공원으로 몰려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를 시작으로 3·1 만세운동의 열기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은 파고다 공원에 오지 못했다는 사실. 조선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스스로 자수를 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 33인은 왜 자수를 했을까? 먼저 사회 지도층인 자신들이 직접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면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질 것을 염려했다. 또한 이들은 우리의 힘만으로 독립하기 어려우며 반드시 다른 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만세시위의 불길이 거세져 폭력 시위가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이를 좋지 않게 볼까 걱정한 것.

 

한편 민족대표 33인으로는 △‘님의 침묵’을 쓴 한용운 △‘천도교’의 수장 손병희 △한성순보 기자였던 양한묵 등이 있다. 

 



○ 3·1운동 현장에 우리나라 사람만? 외국인도 있었다!

 

1916년 11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교수 자격으로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제강점기의 참상을 목격한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 현장과 제암리 사건 현장 등을 사진으로 촬영해 세계에 알렸다. 제암리 사건은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행위로, 1919년 4월 15일 일본 군인과 순경들이 수원군(현재 경기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에 사는 민간인 20여 명의 목숨을 빼앗고 민가 30여 채를 불태운 일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일본 순사들이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들을 잡아가는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캐나다의 선교사 석호필(스코필드의 한국식 표기)이오. 그 학생은 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요!”라고 외치며 그들을 구출해냈다.

 

그는 일제에 의해 1920년 강제 추방을 당했다가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인 1958년 다시 한국으로 와 서울대 수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일하며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이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돌보고 교육했던 그는 1970년 4월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스코필드 박사는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지에 묻혔다.  

 




○ 유관순 열사 마음에 불 지핀 아버지·어머니의 죽음


 

1919년 3월 1일 전국 곳곳에서는 태극기를 쥔 사람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중에는 잘 알려진 ‘유관순 열사’도 있었다. 

 

독립만세운동을 펼치다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는 일본의 탄압으로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잃었다. 현재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아우내(유관순 열사의 고향) 장터에서 만세시위의 열기가 뜨거워지자 일본 헌병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날만 무려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인 유중권은 “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느냐”고 항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찔려 순국했다. 이를 보고 헌병에게 달려든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마저도 일본 헌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에 유관순 열사는 아버지의 시신을 둘러매고 일본 헌병을 찾아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당연한 일을 하는 우리 민족을 왜 총과 칼로 탄압하느냐”고 외치며 항의시위를 계속 했다. 결국 유관순 열사는 독립만세운동 주모자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감금됐고, 옥중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고문으로 인해 17세에 순국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주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당시 독립열사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3·1절인 오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힘썼던 열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에듀동아 김지연 기자 jiyeon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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